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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화. 연예/책이야기. 좋은글 과 시

[좋은시] 좋은시 이해인

by 꽁스의 하루 2020. 11. 2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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꽃씨를 닮은 마침표처럼


내가 심은 꽃씨가
처음으로 꽃을 피우던 날의
그 고운 설렘으로

며칠을 앓고 난 후
창문을 열고
푸른 하늘을 바라볼 때의
그 눈부신 감동으로


비 온 뒤의 햇빛 속에
나무들이 들려주는
그 깨끗한 목소리로


별것 아닌 일로
마음이 꽁꽁 얼어붙었던
친구와 오랜만에 화해한 후의
그 티 없는 웃음으로


나는 항상
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

못 견디게 힘든 때에도
다시 기뻐하고
다시 시작하여
끝내는 꽃씨를 닮은 마침표 찍힌
한 통의 아름다운 편지로
매일일 살고 싶다

 



꿈을 위한 변명


아직 살아 있기에
꿈을 꿀 수 있습니다


꿈꾸지 말라고
강요하지 마세요
꿈이 많은 사람은
정신이 산만하고
삶이 맑지 못한 때문이라고
단정 짓지 마세요

나는 매일
꿈을 꿉니다.
슬퍼도 기뻐도
아름다운 꿈
꿈은 그대로 삶이 됩니다.

오늘의 이야기도
내일의 이야기도
꿈길에 그려질 때가
생각보다 많습니다

꿈이 없는 삶
삶이 없는 꿈은
얼마나 지루할까요

죽으면 꿈이 멎겠지만
살아 있는 동안은
꿈을 꾸고 싶습니다
꿈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고
말할 수 있습니다



하늘을 보며


오늘은 아무 생각 않고
하늘만 보며 행복하다
넓고 높아 좋은 하늘
내가 하고 싶은 모든 말들
다 거기에 있다
보고 싶은 사람들도
말없이 웃으며 손을 흔든다
한없이 푸른
나의 하늘 나의 거울
너무 투명해서
오늘도 눈물이 난

 


 

가을 편지

 

초록의 바다 위에
엎질러놓은
저 황홀한 불빛의
세례성사

솔숲 사이로 빛나는
한 그루 단풍나무처럼
그대는 내 앞에 계십니다

푸름 속에 혼자 붉어
가을 내내
눈길을 주게 되는
단풍나무 한 그루처럼

나도 자꾸
그대를 향해 있는
눈부신 가을 오후




앞치마를 입으세요


삶이 지루하거든
앞치마를 입으세요

꽃밭에 물을 줄 땐
꽃무늬의 앞치마를

부엌에서 일을 할 땐
줄무늬의 앞치마를

청소하고 빨래할 땐
물방울무늬의 앞치마를
입어보세요

흙냄새 비누냄새 반찬냄새
그대의 땀냄새를 풍기며
앞치마는 속삭일 거예요

그대의 삶을
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
조금 더 기쁘게
움직여 보라고

앞치마는 그대 앞에서
끊임없이 꿈을 꾸며
희망을 재촉하는
친구가 될 거예요

때로는
하늘과 구름도
담아줄 거예요







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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